국민성장펀드가 인공지능 반도체 설계 기업인 퓨리오사AI에 8000억원 규모의 자금 지원을 승인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기존 원칙과 다른 방식으로 공적 자금이 먼저 투입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지원은 첨단전략산업기금 3700억원과 산업은행 본체 자금 300억원을 합쳐 총 4000억원의 정책 자금을 우선 투입하는 구조입니다. 나머지 4000억원은 네이버, 한국투자파트너스, 산은캐피탈, 우리금융지주, 한화자산운용 등 민간 투자자들이 부담하게 되며, 현재 자금 모집이 진행 중입니다.
문제는 투자 순서가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당초 국민성장펀드는 민간에서 4000억원의 투자 확약을 받은 후에 공적 자금을 지원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민간 시장이 해당 기업의 기술력과 상업성을 먼저 검증해야 나랏돈을 투입할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민간 투자 확약이 1000억원에도 못 미치는 상황에서 4000억원의 정책 자금 투입이 먼저 결정되었습니다. 두 달 이상의 시간을 주었음에도 퓨리오사AI가 확보한 민간 투자 확약서는 목표의 4분의 1 수준에 그쳤습니다.
과거 사례와 비교하면 더욱 이례적입니다. 앞서 국민성장펀드가 지원했던 리벨리온과 업스테이지는 민간 자금을 먼저 확보한 뒤 같은 금액만큼 정책 자금을 1대1로 매칭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민간의 검증이 선행된 후 공적 지원이 이뤄진 것입니다.
업계에서는 이번 투자 승인 과정에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정책 펀드는 고위험 첨단 산업에 마중물 역할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공공 재원입니다. 따라서 시장의 냉정한 평가와 위험 검증을 거친 민간 자본의 확약이 먼저 있어야 자금 집행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민간 확약이 1000억원 수준인데 4000억원의 정책 자금을 선제 투입하는 방식은 공공이 투자 위험을 과도하게 떠안는 구조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정부 자금 배정이 마중물이 아니라 민간 투자자들에게 검증을 우회한 편승 기회를 제공하는 안전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자금 분배의 일관성 측면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현재 많은 유망 반도체 설계 스타트업들은 자본 시장에서 수십억원 또는 수백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하는 과정에서도 엄격한 매칭 심사를 거치고 있습니다. 과거 사례와 달리 자금 조달 순서가 바뀐 선승인 형태의 지원은 정책 금융 운용의 공정성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퓨리오사AI는 국내 대표적인 인공지능 반도체 설계 스타트업입니다. 1세대 신경망 처리 장치인 워보이를 출시한 데 이어 최근 2세대 제품인 레니게이드 양산에 돌입했습니다. 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 첫 공식 일정으로 직접 방문하여 AI 반도체 분야에 대한 육성 의지를 밝힌 곳이기도 합니다.
퓨리오사AI는 현재 조달 자금을 바탕으로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 기반의 3세대 반도체 개발을 추진 중입니다. 기술력은 인정받았으나 아직 대규모 매출을 내지 못해 본격적인 양산 단계의 자본 공백기를 지나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정부 자금 4000억원 투입이 보장된 만큼 향후 나머지 민간 매칭 자금 모집은 무난히 완료될 전망입니다. 하지만 과거 철저했던 민간 매칭 심사 선례를 깨고 정책 자금을 선제적으로 지원하는 형태에 대해서는 자본 시장 안팎에서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민간 투자 자금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처럼 대규모 정책 자금이 선제적으로 승인된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라며 “성공적인 자금 모집 여부와 무관하게 시장 규칙을 흔드는 선례로 남을 수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