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조선이 미국의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의 핵심 파트너로 떠오른 배경에는 20여 년 전 수출입은행의 선박금융 혁신이 있었다.
과거 선박 수출금융은 조선소가 수입업자에게 장기 할부를 허용하고 할부 채권을 수은에 할인해 대금을 회수하는 ‘공급자 신용(Supplier’s Credit)’ 방식이었다.
조선소가 금융비용과 장기 부채 부담을 모두 떠안아 수주 확대에 한계가 있었다.
실제 1996~2002년 수은의 선박금융 지원 실적은 연평균 1척에 불과했다.
이에 수은은 국내 조선소가 아닌 해외 선주 등 수입업자에게 직접 대출을 제공하기로 했다. 수입업자가 수은에 대출금을 분할 상환하는 ‘수입자 신용(Buyer’s Credit)’으로 전환하자 조선소는 대금 회수 위험과 재무 부담을 덜고 건조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
리스크 관리를 위해 선박 자체와 향후 발생하는 용선 수입을 담보와 상환 재원으로 활용하는 구조화 금융도 함께 도입했다.
그 결과 수은의 선박금융 지원 실적은 2003년 23척, 2004년 79척으로 급증했다.
선박금융 모델을 정비한 후 조선업 슈퍼사이클과 맞물리며 한국 조선업은 사상 처음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2003~2006년 재임 기간 선박금융 패러다임을 전환해 조선업 경쟁력의 기틀을 갖춘 신동규 전 수출입은행장은 이달 3일 “선박금융 방식을 바꾸면서 담보 가치를 분석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구조화 금융 전문가들이 대거 양성됐다”며 “K조선이 한미 투자 협력의 핵심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그때 뿌린 씨앗의 결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 불황에 빠진 조선업을 살리기 위해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에 적극 나선 것도 수은이었다. 2010년대 중후반 조선업 불황을 겪으면서 1000톤 이상의 선박 건조가 가능한 조선소는 30여 개에서 6개로 줄었다. 이에 시중은행 등 민간 금융기관은 RG 발급을 꺼렸다. RG는 조선소가 선주와 계약을 체결한 뒤 선박을 제때 인도하지 못할 경우 선주가 지급한 선수금을 은행이 대신 반환하는 보증으로, 선박 건조 계약의 필수 요소다.
수은 역시 조선 및 해외 건설 장기 불황과 여신 부실 등으로 인해 창립 이후 처음으로 손실을 낼 정도로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RG 발급에 적극 뛰어들었다. 은행권 공동 RG 분담제를 주도하며 전체 공급량의 절반 이상을 책임졌다.
신 전 행장은 “조선업 호황기에는 RG 발급이 쉽지만 조금만 어려워지면 RG가 뚝 끊기기 때문에 정책금융이 나서야 한다”며 “수은이 없었다면 오늘날 조선업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해운업의 성장 기반을 마련한 것도 신 전 행장 재임 시절이다. 당시 해외 선주가 국내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할 때만 구매 자금을 지원하면서 국내 해운사들은 고금리 해외 리스 금융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수은은 2003년 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국내 해운사를 대상으로 ‘외항 선박 구매 자금 지원 제도’를 신설해 국내외 선주 간 금융 조건의 형평성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국내 해운사의 선박금융 조달 비용을 낮추고 국내 조선소의 수주 물량을 확보하며 해운·조선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했다.
2017년 2월 한진해운 파산 이후 위기에 빠진 해운업에 손을 내민 것도 수은이었다. 당시 정부는 현대상선(현 HMM)을 글로벌 원양 컨테이너선사로 육성하기 위해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 확보를 추진했지만 해운 불황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민간 금융은 참여에 소극적이었다.
수은은 상대적으로 위험이 큰 중순위 대출과 후순위 펀드를 맡아 HMM의 경쟁력 회복을 적극 지원했다. 수은은 조선·해운업 등 개별 산업의 위기뿐 아니라 국가 경제의 위기 순간마다 역할을 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외화 유동성이 급격히 위축되자 시중은행이 기업으로부터 매입한 수출환어음을 다시 사들여 외화를 공급하는 무역어음 재할인 업무를 확대했다. 무역금융 규모는 1998년 8450억 원에서 2005년 1조 5550억 원으로 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외화 유동성을 직접 공급하고 나섰다. 외화 차입이 중단되고 단기 외채 비중이 급증하자 수은이 외국환평형기금 250억 달러를 수탁해 국내 16개 기업에 신속하게 공급해 위기를 넘긴 것이다. 원자재 수입과 수출환어음 할인 등 무역금융을 지원하는 동시에 일부 자금은 경쟁입찰 방식으로 공급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신규 유동성 공급과 만기 연장을 통해 중소·중견기업에 26조 6000억 원을 지원했다. 특히 산업은행과 함께 지원한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은 체질 개선을 거쳐 인공지능(AI) 시대 전력수요를 뒷받침하는 핵심 기업으로 성장했다.
신 전 행장은 “수은도 힘든 시기였지만 외화 조달이 어려웠던 시중은행을 적극 지원했다”며 “어려운 격변기마다 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위기를 극복해왔다”고 말했다.
수은은 1960년대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산업구조가 전환되는 과정에서 설립 논의가 시작됐다.
1969년 ‘수출입은행법’이 제정됐지만 자본금을 마련하기 어려워 한동안 한국외환은행에서 중장기 연불 수출 부서로 더부살이를 했다. 이후 중화학공업 수출이 본격화되면서 1976년 자본금 1500억 원으로 독립 출범했다.
출범 후 50년 동안 전 세계 1만 8000개 고객사에 1547조 원을 지원하며 한국 경제를 뒷받침하는 대표 정책금융기관으로 성장했다.
신 전 행장은 수은을 선진국형 국책은행으로 키우는 데 힘을 쏟았다. 한국 기업의 대형 해외 프로젝트 진출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정부로부터 5000억 원 규모의 추가 출자를 이끌어냈고 두바이·상하이·뉴델리 등 거점 도시에 해외 사무소를 신설했다. 그는 “선박금융 규정을 정하는 곳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인데 본부가 있던 프랑스 파리에 사무소도 없었다”며 “수출 시장 다변화를 위해서는 수은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확장돼야 하기 때문에 세일즈맨 역할을 자처했다”고 설명했다.
2004년 중국 수출입은행(China Exim), 일본 국제협력은행(JBIC) 등과 함께 한중일 공적수출신용기관(ECA) 협의체가 출범한 것도 신 전 행장이 주도한 일이다.
2006년에는 아프리카개발은행(AfDB)과 협력해 아프리카 20개국 재무장관을 모아 한·아프리카 경제협력(KOAFEC)도 만들었다. 신 전 행장은 “지금은 지정학적 분절화와 AI 기술 혁명이 동시에 진행되는 구조적 전환기”라며 “이럴 때일수록 수은이 최후의 안전판이자 미래 성장의 촉매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방산·원전·인프라 등 초대형 수주 산업에 대한 금융 제공을 강조했다.
그는 “글로벌 분절화로 인한 자원 무기화와 공급망 위기는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힘들다”며 “수은이 핵심 광물 확보와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는 기업에 선제적 금융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신 전 행장은 수은의 자본금 확충 필요성도 강조했다.
지난해 말 기준 수은의 자기자본은 186억 7000만 달러로 중국 수은(562억 4000만 달러), 일본 JBIC(217억 1000만 달러)에 비해 적다. 그는 “방산·원전 등 초대형 프로젝트는 규모가 큰 만큼 정부도 수은의 자본금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선진국 ECA 자본금이 많은데 한국만 적으면 경쟁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