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바냐 삼촌’의 마지막 장면은 오래 남는 여운을 준다. 모두가 떠난 뒤, 소냐는 지쳐 있는 바냐에게 조용히 말한다. “우리는 쉬게 될 거야. 편하게 쉴 수 있을 거야.” 짧은 한마디지만, 후회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되는 순간이다.
고아성은 이 장면을 작품에서 가장 깊게 마음에 남는 부분으로 봤다. 평소 쉽게 다정한 말을 꺼내지 않는 소냐가, 바냐가 평생 한 번쯤 듣고 싶었을 말을 전하는 장면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장면을 만들면서 지금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감정은 다정함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무대 위 대사를 전할 때마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동시에 자신도 함께 위로받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이서진 역시 마지막 장면의 힘을 크게 느꼈다고 전했다. 극 내내 쉽게 무너지지 않던 바냐가 소냐의 말 앞에서 처음으로 마음을 내려놓는 것 같았다고 했다. 평소에는 위로를 받는 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만약 위로를 받는다면 그렇게 조용하고 따뜻한 방식이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감정이 깊게 올라와 공연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여운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고도 말했다.
고아성은 무대에서 이서진의 마음을 더 크게 움직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이 고민했다고 웃으며 전했다. 서로의 감정을 세심하게 주고받는 과정이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살아났고, 그런 호흡이 관객에게도 진하게 전해진다는 뜻이다.
이번 작품의 이야기는 고전을 바탕으로 하지만, 지금 시대의 관객도 쉽게 공감할 수 있게 다듬어졌다. 바냐와 소냐는 오랫동안 가족을 위해 자신을 미뤄둔 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교수가 새 아내 엘레나와 함께 돌아오면서 조용하던 삶에 균열이 생긴다. 익숙한 관계는 흔들리고, 마음속에 눌러 두었던 불만과 외로움도 하나씩 드러난다.
이서진은 이 작품이 고전이지만 전혀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등장인물들이 지금 우리 주변에서 만날 법한 사람들과 닮아 있고, 특히 바냐의 감정은 중년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고 봤다. 그래서 대사를 자기 말처럼 자연스럽게 풀어내며 인물을 만들어 갔다고 했다.
고아성도 사람 사이의 거리감, 엇갈리는 마음, 어울림과 긴장 같은 요소가 매우 오늘의 감각과 가깝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또한 배우 출신 연출가와 작업하면서, 무대에서 감정을 어떻게 더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지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두 배우 모두 이번 작품이 첫 연극 무대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았다. 이서진은 막이 오른 뒤에도 긴장이 계속되지만, 하루하루 달라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무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주변에서는 무대 위 바냐가 실제 이서진과 많이 닮아 있다는 말도 들었다고 전했다.
고아성은 원래 대사를 잘 외우는 편이지만, 이번 작품은 그만큼 부담도 컸다고 털어놨다. 무대에 오르기 전의 팽팽한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면서, 매일 공연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바냐 삼촌’은 거창한 말보다도, 지친 사람에게 건네는 조용한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화려한 사건보다 사람의 마음을 세밀하게 따라가며, 상처와 후회 속에서도 다시 살아가게 하는 작은 위로의 의미를 천천히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