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은 지난 24일(현지 시간) 엔비디아의 풀스택(전천후) AI 팩토리 아키텍처(설계 구도)인 DSX 플랫폼을 기반으로 SK하이닉스의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가 탑재된 차세대 AI 컴퓨팅(연산 처리) 체계 ‘베라 루빈’을 도입해,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고성능 AI 팩토리를 구축하기로 약속했다.
엔비디아는 그 대신 SK하이닉스에서 차세대 AI 메모리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로 했다.
월가 일각에서는 이 역시 엔비디아가 추진하는 일종의 순환 거래로 해석했다.
세계 인공지능(AI) 반도체 1위 기업인 엔비디아가 지난해에 이어 다시 한번 ‘순환 거래’ 의혹에 휩싸이면서 1년여 만에 시가총액 선두 자리까지 애플에 내줬다.
이번에도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와 순환 거래 관계를 맺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데, 이제 그 대상에 SK그룹까지 추가됐다. 월가에서는 엔비디아 매출의 상당분이 아마존, 구글 모회사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MS),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 오라클 등 하 이퍼스케일러(초대형 클라우드 사업자)들의 천문학적인 자본지출(CAPEX)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이 같은 순환 거래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의 부채 규모가 너무 크기에 자칫 경기가 위축되거나, 금리가 높아지거나, 투자액이 줄어들 경우 엔비디아는 물론 순환 거래 관계에 있는 다른 기업들까지 연쇄적으로 어려움에 빠질 수 있는 까닭이다. 상당수 하이퍼스케일러들의 현금 동원력이 이미 고갈된 데다 은행 대출, 회사채 발행, 유상증자 등 추가 자금 조달 수단도 줄고 있기에 월가에서는 반도체 호황 정점론이 여전히 위세를 부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6일(현지 시간) 엔비디아가 오픈AI의 데이터센터 임차를 돕기 위해 2500억 달러(약 365조 원) 규모의 지급 보증을 서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픈AI가 임차하려는 시설은 미국 오하이오주에 건설하는 10기가와트(GW) 규모의 데이터센터 허브다. 오픈AI와 손잡고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소프트뱅크그룹의 자회사가 해당 데이터센터 단지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샘 올트먼 오픈AI최고경영자(CEO)가 5년간 5000억 달러(약 750조 원)를 투자해 미국 전역에 AI 데이터센터를 짓는 사업이다.
이 초대형 데이터센터 단지는 지난해 미국과 일본이 맺은 무역협정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오픈AI가 엔비디아에 손을 내민 것은 이 회사가 아직 상장사가 아니라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오픈AI는 지금까지 마이크로소프트나 아마존, 오라클 등 클라우드 사업자들의 인프라(기반시설)를 빌려 썼다. 앞으로는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오하이오주 데이터센터를 임차해 상장 전 기업 체급을 키우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미국 경제전문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장외시장에서 오픈AI 기업가치는 9330억 달러(약 1380조 원)로 최근 3개월 동안 20%나 증가했다. 오픈AI는 올 3월 기업가치를 8520억 달러로 인정받았다가 이후에는 경쟁사인 ‘클로드’ 개발사 앤트로픽에 밀렸다는 판단 아래 10% 정도 할인된 가격으로 거래됐다.
오픈AI는 올 10월 상장을 추진하는 경쟁사 앤트로픽과 달리 경영 문제로 내년 기업공개(IPO)를 염두에 두고 있다. WSJ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지급 보증과 별도로 오픈AI가 자사 반도체를 살 수 있도록 약 3500억 달러를 지원하는 계약도 논의하고 있다.
오픈AI나 앤트로픽 등에 투자 명목으로 돈을 줘놓고, 실제로는 그 자금으로 자사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사도록 유도하는 전형적인 순환 거래 계약이다.
WSJ는 “ 이 같은 순환형 자금 조달 방식은 AI 기업 성장이 둔화하거나 투자 심리가 위축될 때 업계 전반의 취약성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전했다.
엔비디아의 순환 거래 의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SK그룹과의 협력도 일종의 순환 거래라는 지적이 월가 일각에서 나왔다.
실제 엔비디아는 24일에도 이재명 대통령과 한미 기술 기업들이 참여한 가운데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AI 서밋’ 행사를 통해 SK그룹과 5000억 달러 이상 규모의 AI 팩토리(공장) 건설, 메모리반도체 공급 등과 관련한 포괄적 협력 의향서(LOI)를 체결했다. SK와도 5000억 달러 인프라 협력…월가에선 또다시 ‘순환 거래’ 의심 젠슨 황(왼쪽부터)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이재명 대통령,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24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AI 서밋에서 전략적 투자 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이번 LOI에서 세부적으로 SK텔레콤은 국내에 최대 2GW(기가와트) 규모의 AI 팩토리를 구축하기 위해 엔비디아에서 차세대 GPU를 공급받고 투자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SK텔레콤은 엔비디아의 풀스택(전천후) AI 팩토리 아키텍처(설계 구도)인 DSX 플랫폼을 기반으로 SK하이닉스의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가 탑재된 차세대 AI 컴퓨팅(연산 처리) 체계 ‘베라 루빈’을 도입해,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고성능 AI 팩토리를 구축할 계획이다.
엔비디아는 대신 SK하이닉스(000660) 에서 차세대 AI 메모리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로 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엔비디아는 SK텔레콤(017670) , SK하이닉스와 함께 한국의 다음 성장을 이끌 새로운 세대의 AI 팩토리를 만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SK텔레콤의 AI 인프라 역량과 SK하이닉스의 메모리반도체를 바탕으로 엔비디아와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의 AI 팩토리를 구축해 대한민국이 혁신을 만들어가는 글로벌 허브(거점)로 도약하는 데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SK그룹은 다른 거대 기술기업(빅테크)과도 총 2500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AI 인프라 협력 관계를 맺었다. 마이크로소프트와는 메모리반도체 장기 공급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고, 앤트로픽과도 한국 내 GW급 AI 데이터센터 구축 협력을 위한 포괄적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아마존웹서비스(AWS)와는 별도 만남을 갖고 기존 울산 데이터센터를 공동 구축하면서 쌓은 협력 관계를 국내 AI 인프라 전반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최 회장은 이 행사에서 올트먼 CEO와도 AI 인프라 분야의 장기 협력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엔비디아의 이 같은 거래 방식에 월가는 재차 불안감을 표출했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9월에도 열 차례에 걸쳐 오픈AI에 100억 달러씩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심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당시 계약 내용도 오픈AI가 엔비디아에서 받은 돈으로 AI 칩을 다시 대량 구매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이는 AI 관련주 전반에 대한 ‘거품론’으로 이어졌고, 지난해 6월부터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치고 굳힌 엔비디아의 시총 1위 지위에도 조금씩 균열을 냈다.
같은 해 10월 29일 역사상 최초로 5조 달러(약 7500조 원)를 넘었던 엔비디아의 시총은 거품론을 완전히 걷어내지 못하고 6개월 동안 4조 달러대에서 횡보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해당 합의는 정식 계약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엔비디아는 결국 올초 오픈AI에 대한 투자 규모를 기존 1000억 달러(약 150조 원)에서 300억 달러(약 45조 원)로 대폭 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