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스닥에 상장된 부실기업을 빠르게 퇴출시키려는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상장사들의 대응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기준 올해 들어 지난달 9일까지 주식을 병합하기로 결정한 곳은 252곳에 달한다. 같은 기간 동안 작년에 주식을 병합한 곳이 11곳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무려 21배 이상 늘어난 수치이다. 이러한 현상은 금융당국이 코스닥 시장의 부실기업 퇴출 기준을 한층 강화한 데서 기인한다.
유예 기간 없이 엄격한 기준 적용
금융위원회는 지난 2월 시가총액, 주가, 자본잠식, 공시 위반 등 네 가지 기준을 기존의 퇴출 요건보다 훨씬 까다롭게 적용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특히 코스닥 기업들에게 가장 큰 부담이 되는 것은 1000원 미만의 동전주를 발행하는 회사에 대한 상장폐지 조치이다.
금융당국은 주식을 30거래일 연속으로 1000원 아래에서 거래한 기업을 관리종목으로 지정하고, 이후 90거래일 중 45거래일 동안 1000원을 넘기지 못하면 상장폐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시가총액 기준도 대폭 상향
정부는 코스닥 상장폐지 시가총액 기준을 기존의 40억 원에서 올해 7월부터 200억 원으로, 내년 1월부터는 300억 원으로 단계적으로 끌어올렸다. 또한 일시적인 주가 조작으로 기준을 회피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도 마련했다.
앞으로는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후 90거래일 동안 연속 45거래일 동안 시가총액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상장폐지가 즉시 진행된다. 주식 병합만으로는 시가총액을 높일 수 없기 때문에 단순한 방식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
유상증자와 합병으로 살아남기 시도
현재 코스닥에는 1820개 종목이 상장되어 있으며, 7월부터 새로 적용되는 시가총액 200억 원 기준에 미달하는 종목은 232곳에 이른다. 내년 1월부터 적용될 300억 원 기준까지 확대하면 그 수는 436곳으로 크게 증가한다.
기준에 모자라는 기업들은 유상증자와 합병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려 노력하고 있다. 시가총액 130억 원 규모인 한 기업은 지난 4월 113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시가총액이 191억 원에 그쳐 7월 기준에 9억 원 부족한 다른 기업도 약 9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하고 있다.
시가총액 160억 원 규모의 한 기업은 3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마련하고 있으며, 여기에 더해 주가 상승을 위한 방안도 함께 추진 중이다. 또 다른 기업도 전략적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유상증자를 검토하고 있으며, 회사 가치 제고 프로그램과 자사주 매입 방안도 동시에 고려하고 있다.
합병을 통해 규모를 키우는 기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시가총액 150억 원 안팎의 한 기업과 257억 원 규모의 다른 기업은 지난달 30일 합병하기로 결정했다. 시가총액 180억 원 수준의 한 기업도 지난 4월 9일 다른 기업과의 합병을 공식화하고 관련 절차를 진행 중이다.
한계에 부딪힌 기업들
그러나 시가총액 100억 원 미만의 코스닥 상장사가 적지 않아, 합병이나 유상증자를 진행하기 어려운 기업이 상당수 존재한다. 이런 이유로 상장폐지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상장폐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주가 부양에 나서고 있지만 결과를 단언할 수 없는 형국이라고 토로했다.
각계의 엇갈린 시각
일부에서는 상장폐지 조치가 경쟁력 있는 기업들에까지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상장폐지 결정이 곧바로 부도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자본조달 비용이 늘어나고, 투자자의 자금 회수가 어려워져 유동성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한 대표도 코스닥 상장폐지 정책으로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금융당국이 유예 기간을 두어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이 앞으로 좋은 소식이 있을 예정이거나 일시적으로 자금 부족을 겪고 있는 경우 유연하게 제도를 적용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반면 경영학계에서는 부실 코스닥 상장사의 퇴출 수순이 적절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한 교수는 코스닥 시장에 다양한 기회가 있었음에도 부실 상장사들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시장 분위기를 악화시켰다는 점을 지적했다. 반대 목소리가 나올 수 있으나 부실기업 퇴출을 통해 시장을 개선하려는 금융당국의 방향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이번 변화가 시장의 건전성을 높이는 과정이라는 입장이다. 금융위원회 한 관계자는 주식 병합으로 동전주에서 벗어나더라도 시가총액 기준을 충족해야 하므로 이번 정책이 코스닥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