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 불안, 정책 신뢰 상실이 키운 위기

김현수 논설위원 “집값을 잡으랬더니 집을 사지도, 팔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요즘 부동산 정책을 두고 가장 많이 들리는 푸념이다.

월드컵 32강 탈락을 빗대 “홍명보 축구만큼 답답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홍명보 축구가 결과보다 더 답답했던 것은 실패가 예견됐는데도 같은 처방을 반복한 점이었다.

부동산 정책도 다르지 않다.

수요와 공급을 거스르고서는 집값을 안정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정부가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시장이 들썩일 때마다 가장 먼저 꺼내 드는 카드는 어김없이 규제다. 정부는 정말 모르는 걸까,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

한 번의 실패는 실수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처방을 반복하면 실수가 아니라 고집이 된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시장은 정부가 언제나 정답을 내놓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틀렸다면 인정하고 방향을 바꾸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집값이 오르면 규제를 강화하고 풍선 효과가 나타나면 규제 지역을 넓힌다. 또 다른 비규제 지역이 들썩이면 정부는 다시 뒤쫓는다. 이른바 ‘두더지 잡기’식 대응이다.

집값보다 규제가 더 빠르게 번지는 사이 시장은 정부보다 한발 앞서 움직인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닥공(닥치고 공급)’을 외치며 이달 말 공급 대책을 예고했다.

방향은 맞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공급 계획보다 뒤따를 보유세 강화나 추가 규제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더 큰 관심사다. 일반 국민과 토론회를 열겠다는 발표에도 “결론은 이미 정해진 것 아니냐”는 시선이 적지 않다.

정책의 문제는 발표가 아니라 신뢰다. 부동산 시장은 하루를 보고 움직이지 않는다. 내 집 마련도 투자도 대부분 5년, 10년을 내다보고 결정한다.

그래서 시장은 정책보다 정책의 일관성을 믿는다. 앞으로도 공급이 꾸준히 이어지고 세금과 대출 원칙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뒤집히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정책은 시장을 설득하려 하지만 시장은 정책이 얼마나 오래 유지될지를 먼저 계산한다. 신뢰는 일관성에서 나온다.

정부는 이달 1일 화성 동탄과 용인 기흥, 구리시를 투기과열지구 등으로 추가 지정하고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었다. 시장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뒷북 규제’가 반복된다고 평가했다. 규제는 과열을 잠시 식힐 수는 있다.

하지만 공급 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더 큰 문제는 시간이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와 윤석열 정부 시절 감소한 착공 물량의 여파가 이제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 공급을 늘려도 실제 입주까지는 최소 3~5년이 걸린다. 공급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그래서 공급 정책만큼은 정권이 바뀌어도 이어져야 한다.

금융과 세제는 시장 상황에 따라 조정할 수 있지만 공급은 중간에 멈출 수 없다. 공급은 한 정부의 성과가 아니라 국가의 약속이어야 한다. 특정 정부만 탓할 일도 아니다. 역대 정부는 모두 집값 안정을 외쳤지만 공급·세제·금융 정책은 정권의 성향에 따라 흔들렸다.

KB부동산 월간 통계에 따르면 정부 출범 후 1년간 서울 아파트 값 상승률은 노무현 11.68%, 이명박 1.78%, 박근혜 -1.44%, 문재인 9.41%, 윤석열 -8.58%, 이재명 14.73%였다. 부동산 경기의 사이클도 있었겠지만 정책의 냉탕과 온탕이 시장 변동성을 키운 것도 사실이다.

정부와 서울시의 공급 힘겨루기도 마찬가지다. 공급 확대라는 목표가 같다면 공공이냐 민간이냐를 두고 주도권 경쟁을 벌일 이유가 없다.

정부는 공공 개발과 공공임대 재건축을, 서울시는 민간 재건축과 재개발을 앞세우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은평뉴타운이 일반분양과 장기전세(시프트), 국민 임대를 함께 배치한 소셜 믹스를 시도했던 것처럼 실용적인 해법이라면 공공과 민간을 가릴 이유도 없다.

중요한 것은 누가 공급하느냐가 아니라 시장이 믿을 수 있도록 공급을 지속하는 일이다.

부동산 시장은 정부가 무엇을 말했는지보다 무엇을 반복했는지를 기억한다. 정부가 정말 모를 리는 없다. 그렇다면 시장이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척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신뢰는 새로운 규제를 내놓는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같은 원칙을 흔들림 없이 지킬 때 비로소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