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세계인공지능대회(WAIC)가 열린 상하이 월드엑스포컨벤션센터 앞에서는 사람을 빼닮은 휴머노이드 경찰이 교통을 정리하고 전시장 입구에서는 키 3m의 유니트리 변신 로봇이 관람객을 맞았다.
올해 WAIC에는 반도체, 생성형 AI, 로봇 등 다양한 분야의 1100여 개 기업이 참가해 3000여 개 제품을 전시했다. 올해 9회째를 맞은 이번 행사에는 처음으로 리창 국무원 총리 대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참석했다. 전시물의 수준이 실제 양산 수준으로 올라선 데 따른 자신감이 나타났다는 평가다.
‘AI 파트너, 함께 만드는 미래’를 주제로 열린 이번 전시는 처음으로 전시 면적이 10만 ㎡를 넘어섰고 참석자는 1만 5000명, 연사는 1400여 명에 달했다. 중국이 이번 WAIC에서 새롭게 공개한 ‘중국지(智)조’ 전략을 네 가지 포인트로 짚어본다.
①잇몸 전략 통했다…수입 못 한 최첨단 칩 중국산 8000개 묶어 구현 17일 중국 상하이 월드엑스포컨벤션센터에서 열린 WAIC에 전시된 화웨이의 AI 컴퓨팅 슈퍼노드 시스템 ‘아틀라스 950 슈퍼포드’ 실물 앞에 관람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화웨이와 알리바바·바이두 등 주요 빅테크는 이번 행사 입구 전면에 자체 칩을 활용한 AI 컴퓨팅 시스템을 배치했다.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린 곳은 화웨이가 첫 실물을 공개한 ‘아틀라스 950 슈퍼포드’다. 자체 칩 ‘어센드 950’ 8192장을 초고속 통신망으로 연결하는 ‘슈퍼노드’ 방식을 활용해 조 단위 매개변수의 대규모언어모델(LLM)을 훈련·추론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엔비디아 차세대 제품 ‘NVL144’와 비교해 총 연산력 6.7배 등 주요 지표에서 세계 선두라는 게 회사 측 주장이며 4분기 출하가 목표다. 이번 신제품은 화웨이가 미국 반도체 수출규제를 돌파하기 위해 추진해온 ‘칩 묶기’ 전략이 실제 통했다는 의미가 있다. 첨단 칩 확보가 불가능해지자 다수의 칩을 효율적으로 연결해 대체한 셈이다. 기술적으로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지만 화웨이는 지난해 3월 자사 첫 슈퍼노드 제품의 상용화에 성공하며 성과를 만들어가고 있다. 올 상반기 발표된 딥시크의 ‘V4’ 역시 이 시스템을 기반으로 학습된 것으로 알려졌다.
②AI+스마트기기 응용으로 ‘돈 되는 AI’ 본격화 17일 중국 상하이 월드엑스포컨벤션센터에서 열린 WAIC 알리바바 부스에서 자체 AI 모델 ‘첸원’ 기반 AI 안경이 전시돼 있다.
생성형 AI 전시관에서는 AI 모델 그 자체보다 이를 응용한 스마트 기기들이 눈길을 끌었다. 알리바바·아이플라이텍 등 다수 대형 기술 기업들은 자체 AI 모델을 탑재한 AI 안경 전시에 상당한 공간을 할애했다. ‘상하이 AI 육소룡’으로 꼽히는 스텝펀은 자체 개발한 AI 휴대폰을, 미니맥스는 자사 AI 모델을 탑재한 이어폰과 반려로봇 등을 대거 선보였다. 최첨단 모델 개발에 몰두하는 미국과 달리 중국은 완비된 제조업 공급망을 기반으로 AI의 빠른 상품화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중국은 올해부터 스마트워치·밴드·안경 등 웨어러블 기기를 국가 보조금 대상에 포함시키며 차세대 스마트 기기 보급에 힘을 쏟고 있다. 그 결과 시장조사 업체 IDC에 따르면 올해 세계 AI 안경 출하량에서 중국 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45%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AI와 웨어러블 기기의 결합은 구글과 메타 등 실리콘밸리의 빅테크들도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③두뇌에 생체모사까지…로봇만큼은 첨단 기술력 확보 17일 중국 상하이 월드엑스포컨벤션센터에서 열린 WAIC 애지봇 전시관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이 생산 라인에서 작업하는 모습이 전시돼 있다.
3 개 전시관 가운데 가장 큰 변화가 감지된 곳은 로봇 전시관이었다. 지난해와 달리 춤이나 곡예 중심의 공연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대신 볼트를 조이고 자재를 운반하는 등 실제 현장 적응 능력이 강조됐다. 텐센트는 자체 로봇 연구소 ‘로보틱스X’가 개발한 피지컬 AI 모델 3종을 소개하고 이를 탑재한 안마 로봇을 전시장 입구에 배치했다. 센스타임도 자사 ‘카이로스 월드 모델’을 적용한 로봇이 식사를 준비하고 빨래를 개는 모습을 연출했다. 아직 미국이 중국에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 로봇의 ‘두뇌’ 분야에서도 추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펑즈후이 애지봇 창업자는 현지 매체 계면신문에 “지난 2년간 과시적인 시연에 그쳤던 로봇 산업이 이제 실제 적용과 생산성 향상 단계로 전환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피부 질감까지 사람을 닮은 생체 모사(바이오닉) 로봇도 행사장 곳곳에서 눈길을 끌었다.
④‘AI판 일대일로’로 美 주도 팍스실리카에 균열 17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인공지능대회(WAIC) 개막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연설하고 있다.
중국은 WAIC 개막에 하루 앞서 러시아·브라질 등 총 29개국이 참여하는 국제 AI 협력기구를 공식 출범했다. 지난달 앤트로픽 등의 최고경영자(CEO)들이 미국 주도의 AI 협력체 구축을 제안했지만 정부 통제 논란으로 지지부진한 사이 선수를 친 셈이다. 중국은 WAIC에 학술 행사를 통해 딥러닝 분야 권위자인 요수아 벤지오, 지난해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최근 칭화대에 합류한 오마르 야기 교수 등 세계적 석학들을 한자리에 끌어모았다. 시 주석은 이날 연설에서 “향후 5년간 개발도상국에 AI 관련 연수 기회를 5000건 제공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미국 주도의 AI 공급망 공동체 ‘팍스 실리카’에 대항해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개발도상국)’를 포섭하는 ‘AI 외교’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