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전쟁 틈타 26조 짬짜미…‘유가담합’ 4개 정유사 임직원 무더기 재판행

기름값과 관련해 26조 원 규모의 담합을 이어온 유가 업체의 임직원들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가 가격 인상을 사전 담합하고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이 이를 추종해 시장 전반의 가격 급등을 유발했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나희석)는 6일 국내 정유시장을 과점하는 HD현대오일뱅크·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의 유가 교란 사건을 수사한 결과, 4개 법인과 HD현대오일뱅크 가격결정부서장과 책임매니저, 법무실장, GS칼텍스 국내영업 부문장 등 총 8명을 공정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HD현대오일뱅크 가격결정부서장은 구속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직접 담합 규모는 14조2000억 원에 달했다.

여기에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의 가격 추종에 따른 의식적 병행행위까지 포함하면 약 26조 원 상당의 경쟁제한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정유시장 점유율이 98.6%에 달하는 4개 업체의 과점 구조상 일부 업체의 담합이 시장 전체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미국·이란 전쟁 직후 국내 석유제품 가격이 급등한 배경을 규명하기 위해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결과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 가격결정 책임자들이 전쟁 직후 가격 인상 시기와 폭을 사전에 협의한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 4대 정유사는 상당량의 원유를 이미 비축하고 있어 원가 상승만으로 가격 폭등을 설명하기 어려웠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검찰은 양사의 담합이 일회성 범행이 아니라는 점도 확인했다.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는 2024년 7월부터 서로 가격 정보를 주고받으며 가격 정책을 조율했고, 미국·이란 전쟁이 발발하자 SK에너지가 HD현대오일뱅크보다 리터당 30~40원 높은 수준으로 가격을 인상하는 방식의 담합을 실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GS칼텍스와 에쓰오일도 경쟁사 가격을 주요 기준으로 삼아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의 인상 폭을 그대로 따라가는 방식으로 가격을 올린 것으로 파악했다. 이 같은 행위는 경쟁질서를 훼손하는 전형적인 의식적 병행행위에 해당하지만 현행 공정거래법상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어서 두 회사는 이 부분 혐의로는 기소되지 않았다.

검찰은 가격 담합과 별도로 4대 정유사의 ‘전량구매 계약’ 관행도 문제 삼았다. 정유사들은 자영주유소와 계약을 맺으면서 자사 제품만 구매하도록 하고 공급가격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계약을 어긴 주유소에는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나 보너스카드 지급 중단 등 불이익을 부과하며 거래를 사실상 강제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러한 유통 구조가 소비자 부담을 키웠다고 판단했다. 자영주유소가 더 저렴한 공급처를 선택할 수 없게 되면서 경쟁이 차단됐고, 결과적으로 석유제품 가격 상승이 소비자에게 전가됐다는 것이다.

한국주유소협회 설문에서도 자영주유소의 83.3%가 실질적인 계약 선택권이 없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사 과정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방해하기 위한 증거인멸 정황도 확인됐다.

HD현대오일뱅크 법무실장은 공정위 현장조사 정보를 미리 입수한 뒤 경쟁사 가격 자료 삭제를 지시했고, GS칼텍스 국내영업 부문장은 가격 관련 사내 메신저 대화 삭제를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이들을 조사방해 및 증거인멸 혐의 등으로 함께 기소했다. 이와 함께 검찰은 HD현대오일뱅크, SK에너지, 에쓰오일 등 3개 정유사가 전쟁 직후 실제보다 낮은 공급가격을 산업통상자원부에 허위 보고한 사실도 확인했다.

검찰은 산업부와 관련 자료를 공유해 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한편 국가 경제를 교란하는 공정거래 범죄에 대해 지속적으로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