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지역의 전쟁으로 인한 지정학적 위험이 커지면서 세계 공급망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의 필요성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무역 전문가들은 공급망 위기가 일상화된 지금, CPTPP를 통한 다자간 협력 체제 참여가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농수산물 시장 개방 문제와 한일 외교 갈등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는 지적입니다.
CPTPP의 전략적 가치
전문가들은 CPTPP를 단순한 무역 협정이 아닌, 공급망 안정과 국제 통상 주도권을 좌우하는 전략적 과제로 평가합니다. 이 협정에는 일본, 호주, 캐나다, 싱가포르, 영국 등 태평양 주변 12개국이 참여하고 있으며, 회원국 간 폭넓은 시장 개방과 통상 규범 통일을 목표로 합니다.
우리나라가 CPTPP에 가입하면 전 세계 국내총생산의 약 15%를 차지하는 회원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개선되고 공급망 안정성도 확대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호주, 뉴질랜드 등 주요 자원 및 생산국이 포함된 CPTPP에 가입하면 공급망 안정 효과가 분명하다”며 “현재처럼 공급망 위험이 커진 상황에서는 가입이 불가피하다”고 말했습니다.
명지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 역시 “세계 공급망과 통상 질서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처럼 대외 의존도가 높은 경제는 혼자 대응하기 어렵다”며 “CPTPP는 이러한 변동성을 완화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플랫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경제적 실익에 대한 신중론
다만 경제적 이익에 대해서는 신중한 의견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CPTPP 회원국 대부분과 이미 양자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상태여서 추가적인 무역 확대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CPTPP 가입이 국내총생산이나 무역수지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올지는 불확실하다”면서 “경제적 이익보다는 다자 협정을 통해 국제 이슈 대응에서 발언권을 확보하고, 국제 통상 네트워크에서 소외되는 것을 막는 의미가 크다”고 분석했습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CPTPP에 가입하면 실질 국내총생산이 0.33~0.35%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산업별로는 제조업에서 수출 및 생산이 증가하는 반면, 농업과 수산업에서는 생산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농업 분야의 생산 감소 규모를 15년간 연평균 853억~4400억원으로 추정하기도 했습니다.
정치적 변수와 일본의 역할
정치적 변수도 적지 않습니다. 인하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2021년부터 정부가 CPTPP 가입 추진을 결정했지만 국회 상임위원회 보고 단계에서 막히며 절차가 진전되지 못했다”며 “농업 문제와 정치적 판단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다만 현재는 정치 여건이 개선된 만큼 정부 의지만 있다면 추진 가능성은 높다”고 덧붙였습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일본입니다. CPTPP는 신규 가입국 승인 시 기존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를 요구하는 구조로, 사실상 일본의 입장이 결정적 변수로 작용합니다.
특히 미국 탈퇴 이후 일본이 협정 출범과 운영을 주도해왔고, 주요 회원국 중 가장 큰 경제 규모를 바탕으로 협상 과정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가입 열쇠를 쥐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과거사나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문제 등이 한일 간 핵심 협상 쟁점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명지대학교 교수는 “일본이 가입 조건으로 후쿠시마 수산물 문제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정치적 판단이 불가피하다”며 “결국 한일 관계를 실리적으로 잘 관리하고 국내 산업 보호 대책을 병행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정부의 투트랙 전략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CPTPP 가입과 별도로 양자 자유무역협정을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을 유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기업 입장에서는 선택 가능한 통상 옵션이 많을수록 유리하다”며 “양자·다자 협정을 병행해 가장 유리한 조건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