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치권에서 다시 독도 관련 발언이 나오면서, 한일 관계가 또 한 번 흔들리고 있다. 일본 총리는 국제사회에 자국 입장을 더 분명히 알리겠다고 말했고, 우리 정부는 독도 문제는 분쟁 대상이 아니며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처럼 두 나라는 가까이 있지만 쉽게 가까워지지 못한다. 분위기가 풀리는 듯하다가도 역사 문제나 영토 문제로 다시 차가워진다. 한일 관계를 이야기할 때 늘 과거가 먼저 떠오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침략, 식민 지배, 강제 동원,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지금도 두 나라 사이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은 많은 한국인이 자주 찾는 여행지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나라다. 왜 일본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한 책이 바로 일본을 걷는 이유다. 저자는 약 2년 동안 일본 여러 지역을 직접 다니며 현장을 보고, 사람을 만나고, 그 기록을 한 권에 담았다.
책은 일본 남쪽 끝 이부스키에서 북쪽 왓카나이까지 이어지는 긴 여정을 따라간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하나의 일본만 보지 않는다. 역사를 불편하게 바꾸려는 모습도 만나고, 전쟁 책임을 외면하는 태도도 본다. 반대로 과거를 반성하려는 사람들,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움직이는 시민들도 함께 발견한다. 그래서 이 책은 일본을 한쪽으로만 판단하지 않게 만든다.
저자가 보여주는 핵심은 감정만으로 일본을 바라보지 말자는 점이다. 익숙한 분노에만 머무르지 않고, 실제 현장을 통해 무엇을 봐야 하는지 차분히 묻는다. 눈에 잘 띄지 않았던 장소와 사람, 그리고 기억 속에서 밀려났던 이야기를 다시 끌어올리며 독자에게 새로운 시선을 건넨다.
구성도 뚜렷하다. 첫 부분에서는 윤동주와 송몽규의 비극이 남아 있는 후쿠오카, 조선 침략의 출발점으로 거론되는 지역 등을 살피며 기억의 출발점을 짚는다. 다음 장에서는 가고시마와 가미카제 관련 현장을 통해 일본 근대화가 남긴 빛과 그림자를 함께 생각하게 한다. 이어 히로시마의 원폭 기억, 시마네 지역의 독도 주장, 안중근 의사를 기억하는 일본인들의 행동을 통해 역사 속 어두움과 양심의 흔적을 함께 비춘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사도 광산 강제 동원과 홋카이도 수탈의 흔적을 따라가며 책임, 사과, 화해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일본 사회 안에도 여러 얼굴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군국주의적 사고를 답습하는 세력이 있는가 하면, 인간의 양심에 따라 행동한 사람들도 있다. 책은 안중근 의사를 체포한 뒤 그의 인품에 깊이 마음이 움직였던 헌병, 조선인을 위해 변론한 법률가,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을 지키려 했던 공무원, 강제노동 희생자 유해를 찾는 시민단체 등을 소개하며 일본 사회를 단순한 한 덩어리로 보지 않게 한다.
이 책을 두고 한 전문가는 답을 밀어넣는 책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평가했다. 질문이 깊어질수록 비판은 더 분명해지고, 막연한 미움은 힘을 잃게 된다는 뜻이다. 또 다른 평가는 이 책이 일본을 새롭게 보게 하는 창이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라고 말한다.
결국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일본을 안다는 것은 일본을 무조건 감싸자는 뜻도, 감정적으로만 밀어내자는 뜻도 아니다. 오히려 사실을 바로 보고, 잘못은 분명히 짚고, 사람과 사회를 더 세밀하게 구별해 이해하자는 제안에 가깝다. 더 넓고 성숙한 시선으로 일본을 바라볼 때, 우리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조용하지만 묵직한 질문이 이 글의 끝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