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수첩에 남겨진 오프 더 레코드 , 언론 인생 60년의 기록을 다시 공개하다


심상기 서울미디어그룹 회장
이 자신의 삶과 언론 현장을 돌아본 책 ‘내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를 펴냈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자서전에 머무르지 않는다. 한국 사회가 크게 흔들리던 시기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기자의 기억, 그리고 언론사와 출판사를 이끌며 부딪혔던 도전의 시간이 함께 담겨 있다.

 

저자는 젊은 시절 현장에서 굵직한 사건들을 직접 보았지만, 당시에는 분위기가 매우 민감해 신문 기사로 다 쓰지 못한 일이 많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세상에 내놓지 못한 이야기 상당수를 취재수첩에 적어 두었고, 이번 책에서 그 기록을 바탕으로 지난 시대를 다시 비춰본다. 거창한 업적을 내세우기보다, 기억나는 사실을 최대한 솔직하게 꺼내 놓으려 했다는 점이 이 책의 바탕이 된다.

 

책에는 사건의 현장을 지킨 기자로서의 시간과 멈추지 않고 새판을 짠 경영인으로서의 시간이 함께 들어 있다. 사월 혁명 직후 언론계에 들어선 뒤 5.16 군사정변, 유신 시기, 10.26 사건, 6월 항쟁 등 한국 현대사의 큰 물줄기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경험이 생생하게 이어진다. 특히 검열을 받기 위해 신문 원고를 들고 다니던 시절의 긴장감, 취재원을 지키기 위해 버텨야 했던 순간들이 또렷하게 전해진다.

 

이 책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좋은 기억만 고른 회고록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는 자신이 겪은 실패도 숨기지 않았다. 특종을 놓쳐 징계를 받을 뻔한 일, 케이블방송 사업에서 너무 빨리 손을 뗀 뒤 오래 아쉬워한 일, 일요신문 인수 뒤 정간 처분을 겪으며 경영 원칙을 다시 돌아본 일까지 담담하게 적었다. 그래서 책은 성공담만 늘어놓는 기록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읽힌다.

 

또한 그는 역사 속 인물들을 실명으로 적으며, 불편할 수 있는 뒷이야기까지 가능한 한 사실에 가깝게 남기려 했다. 그만큼 이 책을 개인 추억집이 아니라 현대사의 빈틈을 메우는 증언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일협정 비준 당시 도쿄 취재,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트는 과정에서 오간 이야기, 신군부 시절 언론 통제에 부딪힌 답답함 같은 장면들도 빠지지 않는다.

 

저자가 끝까지 붙잡은 중심 가치는 왜곡되지 않은 진실을 찾는 일이었다. 그는 기자란 사실을 흐리지 않고 드러내야 하는 사람이라고 믿었고, 취재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을 수 있다는 점까지 돌아보며 스스로를 엄격하게 살폈다. 이런 태도는 책 전체에 잔잔하지만 분명한 울림으로 남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저자는 김대중의 정신을 설명하는 핵심 단어로 용서를 꼽는다. 오랜 박해와 큰 고통을 겪고도, 정권을 잡은 뒤에는 국민 통합을 위해 과거를 무조건 적으로만 대하지 않았다는 점을 높이 본 것이다. 저자는 지금도 그 넓은 포용력이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고 전한다.

 

언론인으로서의 길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중앙일보에서 일할 때는 권력의 압박 속에서도 언론의 자리를 지키려다 결국 물러나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쉰셋에 서울문화사를 세우며 출판 경영에 뛰어들었고, 여성지와 만화잡지 등을 성공시키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이후 일요신문과 시사저널을 다시 세우고, 경영난을 겪던 경향신문 재건에도 힘을 보태며 언론 경영인으로서 뚜렷한 발자국을 남겼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대단한 성공 사례로 포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계속 생각하고, 애쓰고, 다시 시도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더 중요하게 말한다. 실패를 겪어 본 사람만이 성공의 무게를 안다고 하면서, 넘어졌던 기억까지 감추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화려한 업적을 자랑하는 글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힘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기록에 가깝다.

 

결국 ‘내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는 과거를 정리하는 책이면서도,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말이기도 하다. 좌절은 끝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는 순간일 수 있고, 실패는 다음 출발을 준비하게 하는 시간일 수 있다는 뜻이다. 오랜 세월 한길을 걸으면서도 계속 새 출발을 선택한 저자의 삶은, 불안한 시대를 버티는 젊은 세대와 새로운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조용하지만 묵직한 용기를 건넨다.

 

심상기는 1936년 충청남도 부여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경향신문 사회부와 정치부 기자를 지냈고, 중앙일보에서는 정치부장과 편집국장, 출판 담당 임원을 맡았다. 이후 경향신문 사장을 지냈으며, 천구백팔십팔년 서울문화사를 세워 여러 잡지를 창간했다. 1994에는 서서울케이블티브이를 만들었고,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조직위원장도 맡았다. 지금은 일요신문과 시사저널 등을 아우르는 서울미디어그룹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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